Isaac Sim은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NVIDIA 문서에 적힌 최소 사양은 RTX 4080, VRAM 16GB였습니다. 제 책상 아래 컴퓨터에 꽂힌 것은 RTX 3060 Ti, 8GB. 정확히 절반이라 시작도 하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설치해 보니 그냥 돌아가더군요. 그래서 이 글은 사양 이야기가 아닙니다. 겨우 켜 놓고 안을 들여다봤더니, Isaac Sim은 제가 생각하던 하나의 프로그램 이 아니었거든요. 실행 파일부터 로봇 한 대까지, 열어 보는 곳마다 예상과 다른 물건이 나왔습니다. 이 글은 그 구조를 더듬어 본 기록입니다. 최소 사양의 절반짜리로 켜 봤습니다 공식 문서의 표는 세 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최소가 RTX 4080에 VRAM 16GB와 램 32GB, 권장이 RTX 5080에 램 64GB, 이상적 사양은 RTX PRO 6000 블랙웰에 VRAM 48GB. 맨 오른쪽 칸은 개인이 살 물건의 가격대가 아니죠. 제 사양을 그 표 옆에 나란히 적어 봤습니다. CPU는 i7-14700K 20코어, 램 32GB, 저장 공간은 넉넉했고요. 그러니까 세 항목은 기준을 넘고 GPU 하나만 절반 이었습니다. 하필 그 하나가 가장 중요한 부품이라는 게 문제였죠. 그래도 한번 깔아 보기로 했습니다. 설치본을 풀어 놓고 용량을 재 보니 18.1GB, 버전은 6.0.1이더군요. 압축 푸는 데만 한참 걸렸습니다. 첫 실행이 길었습니다. 셰이더를 전부 컴파일하는 동안 창이 흰 화면으로 굳어 있어서 몇 번이나 강제 종료를 누를 뻔했고요. 여기서 끄면 캐시가 깨져 다음에 더 오래 걸린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두 번째 실행부터는 금방 떴습니다.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돌아간다는 것과 제대로 쓴다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 확인한 건 화면이 뜨고 로봇이 움직인다는 사실까지예요. 강화학습으로 환경을 수천 개씩 동시에 굴리는 단계에서 8GB가 어디서 멈추는지는 아직 재 보지 않았습니다. 최소 사양이라는 표는 아마 그 지점을 염두에 두고 그어진 선일 겁니다. 언젠가 그 벽에 부...

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6편) — 로봇 팔은 왜 무거운가: 감속기·소재 해부

지난 5편에서 SO-101과 Franka를 비교하다, 한 줄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Franka의 무게 18kg. 사람 팔은 약 3.5kg인데, 성능 좋은 로봇 팔은 왜 그 5배가 넘을까요?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앞으로 다룰 휴머노이드 는 이 무게 문제가 훨씬 치명적입니다. 팔 하나가 아니라 온몸을, 그것도 다리로 들고 걸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무게 줄이기가 휴머노이드 업체들의 진짜 승부처 라고 봅니다. 복잡한 휴머노이드에서 이걸 파헤치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 팔이라는 가장 단순한 대상 에서 원재료·부품 원리까지 끝까지 파보겠습니다. 이 글은 좀 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해두면, 나중에 휴머노이드를 볼 때 눈이 달라집니다. 1. 먼저 숫자로: 우리 두 로봇을 해부하다 말로 하기 전에, 우리가 실제로 다룬 두 로봇의 시뮬레이션 모델(MJCF)에 박힌 질량 데이터 를 그대로 뽑아봤습니다. (추측이 아니라 실측입니다.) 실측 · 우리 프로젝트 시뮬 모델(MJCF) 기준 무게는 어디에 쏠려 있나 — 링크별 무게 지도 두 로봇의 각 링크(마디) 무게를 같은 축척으로 나란히. Franka는 어깨(link1) 하나가 5kg , SO-101 팔 전체(0.63kg)의 8배다. 무게가 밑동에 쏠릴수록 그 관절이 팔 전체를 드느라 큰 감속기·모터를 쓴다는 뜻. SO-101 · 총 0.63 kg base 147g shoulder 100g upper_arm 103g lower_arm 104g wrist 79g gripper 87g jaw 12g Franka Panda · 총 17.5 kg link0 630g link1 4,971g link2 647g link3 3,229g link4 3,588g link5 1,226g link6 1,667g link7 736g hand 730g 막대 길이는 F...

Franka로 성공, 무엇이 달랐나 (5편)

같은 코드였습니다. 명령도 같았습니다. "큐브를 집어서 초록 목표로 옮겨." 그런데 이번에는 보조 장치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는데 큐브가 3mm 오차로 목표에 내려앉았습니다. 3편에서 상자를 파고들던 그 집게와, 문장 하나 다르지 않은 명령을 받은 결과입니다. 달라진 것은 코드가 아니라 제품이었습니다. 같은 명령, 정반대 결과 3편의 SO-101은 이랬습니다. 그리퍼가 큐브를 파고들거나, 물었다 싶으면 미끄러졌습니다. 보조 장치를 붙여 옮기는 데까지는 갔지만 근본 한계는 그대로였죠. Franka Panda는 보조 하나 없이 실제 마찰로 큐브를 물었습니다. 접근하고, 내려가고, 손가락을 닫고, 20cm를 들어 올려, 목표 위에서 다시 내려놓고 손을 폈습니다. 배치 오차는 3mm. 몇 번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였습니다. 코드 구조가 거의 동일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어 방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손끝이 바뀐 것이죠. 3편에서 며칠을 쓴 문제가 로봇을 갈아 끼우자 한 번에 사라졌습니다. 기분이 좋기보다는 조금 허탈했습니다. 같은 로봇팔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왜 이렇게 다를까요. 답을 찾으려고 두 제품의 공개 사양을 나란히 늘어놓아 봤습니다. 사양을 나란히 재 보니 100배가 나왔습니다 같은 "로봇팔"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세계의 장비 SO-101과 Franka Panda의 공개 사양을 나란히 놓아 봤습니다 SO-101 · 학습 입문용 ≈ 20만 원대 (부품 기준 조립형) ≈ 100배 가격 차이 Franka Panda · 연구 산업용 ≈ 수천만 원 (연구용 완제품) 6축 서보 6개 자유도 7축 여유 자유도 비규격 · 취미 교육급 반복 정밀도 ± 0.1 mm 수백 g급 소형 가반하중 3 kg 데스크탑급 약 0.4 m 작업 반경 855 mm 소형 비대칭 · 한쪽만 개폐 그리퍼 평행 2지 · 개폐 약 80mm · 약 70N 없음 힘 센싱 7축 토크 센서 약 1 kg 본체 무게 약 18 kg ✕ 그리퍼가 물체를 파고듦 시...

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4편) — 다음 로봇 고르기: 왜 Franka Panda인가

모델 폴더를 열었더니 로봇이 70종 넘게 들어 있었습니다. 고를 것이 많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3편에서 확인한 것은 "SO-101로는 상자를 못 집는다"였지, "그럼 무엇으로 바꾸느냐"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번 편은 답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남깁니다. 이 시리즈의 진짜 목적인 안목이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라서입니다. 후보는 이미 다 있었습니다 MuJoCo에는 Menagerie라는 공식 로봇 모델 모음이 있습니다. 로봇팔, 사족보행, 휴머노이드, 손까지 70종이 넘게 무료로 공개돼 있습니다. 이름만 훑어도 규모가 짐작됩니다. 로봇팔 — Franka Panda, UR5e·UR10e, KUKA iiwa, Kinova, xArm, Trossen ViperX·WidowX 사족보행 — Unitree Go1·Go2, ANYmal, Boston Dynamics Spot 휴머노이드 — Unitree G1·H1, Apptronik Apollo, PAL Talos. 현장에 배치되고 있는 기종들 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손과 그리퍼 — Shadow Hand, Allegro, Robotiq 2F-85 여러 로봇을 하나씩 갈아 끼워 볼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제 장기 목표가 여러 기종을 이해하는 것이니 조건은 나쁘지 않았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목록을 훑으면서 알았는데, 후보가 많다는 것은 고르기 쉽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기준 없이 목록을 보면 결국 이름값으로 고르게 됩니다. 이름값으로 고르는 것은 3D 프린터를 살 때 제가 이미 해 본 방식이고, 그 결과가 창고 선반에 있습니다. 첫 갈림길은 성능이 아니라 그리퍼였습니다 그래서 로봇팔 모델부터 두 부류로 갈라 봤습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리퍼가 붙어 있느냐, 아니냐. 한쪽은 팔과 그리퍼가 통합된 모델입니다. Franka나 Trossen처럼 받자마자 바로 집기를 시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쪽은 팔만 있는 모델입니다. UR...

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3편) — "아무거나 잘 집을 줄 알았다"

상자는 목표 지점으로 옮겨졌습니다. 성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확대해 보니, 집게가 상자를 뚫고 들어가 있더군요. 물건을 든 채로 이동하긴 하는데 집게가 상자 속에 박혀 있는 기이한 그림이었습니다. 이번 편은 그 실패담이고, 이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를 가장 정확히 설명해 준 편이기도 합니다. 집을 물건도 없었고, 놓고 나니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화면에 팔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집을 대상이 없으니 픽앤플레이스가 될 리가 없죠. 당연한 사실인데도 팔을 띄우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MuJoCo는 물리 엔진이라 씬에 물체를 추가하면 됩니다. 다만 물체를 놓는다는 게 그림 하나를 얹는 일이 아니더군요. 크기와 질량, 마찰 계수를 직접 정해 줘야 합니다. 값을 적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집으려는 게 정확히 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전까지 제 머릿속의 대상은 그냥 물건이었습니다. 중력과 마찰이 적용되는 상자를 하나 놓았습니다. 밀면 굴러가고, 그리퍼로 누르면 반응하는 진짜 물리 객체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다음 상자를 집으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잘 안 잡힙니다. 그리퍼가 헛돌거나, 상자를 밀어 버리거나, 들어도 미끄러집니다. 열 번 시켜서 열 번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깨달음이 왔습니다. 로봇 그리퍼로 물건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밀한 일이더군요. 실제 로봇도 마찬가지라서, 산업 현장에서는 마찰 패드를 붙이거나 진공 흡착으로 바꾸거나 접근 각도를 정교하게 잡아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카드 한 장을 집는 손끝 이 왜 그렇게 어려운 기술인지, 화면 안에서 처음으로 체감했죠. 좌표가 틀린 줄 알았는데, 손가락이 너무 길었습니다 집는 것을 도와주는 보조 장치를 넣어 어찌어찌 옮기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확대해 보니 앞에서 말한 그 장면이 나왔죠. 처음에는 좌표 계산이 틀렸나 싶었습니다. 목표 자세를 넣는 코드부터 다시 봤고, 숫자를 조금씩 바꿔 가며 열댓 번을 돌렸습니다. 그래...

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2편) — MuJoCo 설치와 SO-101 첫 구동

터미널에 명령 몇 줄을 넣자 창이 하나 떴습니다. 회색 바닥 위에 로봇팔 하나. 마우스로 팔을 끌어 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돌아간 것은 팔이 아니라 카메라 시점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설치 방법이 아니라 그 사실이었습니다. 왜 MuJoCo였고, 왜 SO-101이었나 선택지는 여러 개였습니다. 엔비디아 아이작 심, 게이제보, 그 외에도 여럿이죠. 그중 MuJoCo로 시작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무료이고 노트북에서 돕니다. 로봇 회사들이 가상 환경에서 먼저 넘어뜨려 보는 장면을 보면 대단한 장비가 필요할 것 같지만, 팔 한 대를 띄우고 관절을 돌려 보는 데는 비싼 GPU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1편에서 정한 원칙이 첫 줄부터 지켜진 셈이죠. 둘째, 물리 엔진이 진짜입니다. 중력과 질량, 마찰, 접촉력을 실제로 계산합니다. 이 말을 그냥 믿기는 싫어서 직접 확인해 봤는데, 그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 적습니다. 셋째, 모델이 풍부합니다. 로봇팔부터 사족보행, 휴머노이드까지 대표 기종이 무료로 공개돼 있어 나중에 갈아 끼워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로봇을 비교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이니 이 조건이 컸습니다. 그런데 시뮬레이터를 고른 것과 로봇을 고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뮬레이션만 하고 끝낼 생각이라면 어떤 모델을 띄우든 상관없죠. 제 목적은 사기 전 예습이니, 화면 속 그 팔을 실제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첫 로봇은 SO-101(SO-ARM101)로 정했습니다. 판매 중인 LeRobot 계열 오픈소스 6축 로봇팔이고, 공식 시뮬레이션 모델이 무료로 공개돼 있으며, 입문용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입니다. 사려던 그 팔을 화면에서 그대로 다뤄 본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전제입니다. 엔진이 진짜인지, 물체를 떨어뜨려 확인했습니다 "물리가 진짜"라는 문장은 광고에도 쓰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직접 재 봤습니다. 하나는 자유낙하입니다. 물체를 공중에 놓고 떨어뜨린 다음, 바닥에 닿기...

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1편) — 왜 시뮬레이션부터 시작했나

회사 창고 선반에 장비 두 대가 놓여 있습니다. 3D 프린터 한 대, 3D 스캐너 한 대. 둘 다 제가 스펙표만 보고 결제한 것들. 지금은 아무도 켜지 않습니다. 이번에 로봇을 사려다 손이 멈춘 이유는 성능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선반이 먼저 떠올라서였습니다. 스펙표는 다 맞았고, 틀린 쪽은 제 해석이었습니다 발단은 회사 제품이었죠. 우리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시제품까지 뽑아 보려고 3D 프린터 Ender 3와 3D 스캐너 Creality Ferret을 들였습니다. 프린터로 부품을 뽑고 스캐너로 형상을 따오는, 머릿속에서는 꽤 그럴듯한 그림이었죠. 결과는 상용화 실패였습니다. 출력물은 제품으로 쓰기에 정밀도와 강성이 부족했고, 스캐너는 실무에 바로 넣을 만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뽑아 주지 못했습니다. 두 대 모두 재고가 됐죠. 실패한 뒤에 스펙표를 다시 펼쳐 봤습니다. Ender 3의 공개 사양에 적힌 적층 두께는 0.1mm, 노즐 지름은 0.4mm입니다. 제가 15년을 보낸 금형 쪽에서 도면에 적히는 공차는 그보다 한 자리 아래입니다. 숫자는 처음부터 스펙표에 다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제 일에서 무슨 뜻인지를 몰랐을 뿐입니다. 그때 문장 하나를 배웠습니다. 하드웨어는 써보기 전에는 진짜 성능을 모릅니다. 그런데 써보고 나면 이미 결제가 끝나 있죠. 그런데 사보지 않고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 경험이 로봇 앞에서 발목을 잡았습니다. 로봇은 3D 프린터보다 훨씬 비싸고, 종류는 비교도 안 되게 많습니다. 팔 하나짜리 협동로봇부터 사족보행, 사람 형태의 휴머노이드까지 몇 년 전과는 다른 속도로 쏟아집니다. 여기서 또 잘못 고르면 선반에 놓일 물건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금전적 리스크를 줄이는 일입니다. 어떤 로봇이 제 작업에 맞는지 결제 전에 판단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안목입니다. 로봇팔과 이동로봇과 휴머노이드가 각각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어떤 로봇을 어디에 붙일지 고르는 감...

휴머노이드 로봇 100m 8.64초, 멈추는 법은 없었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로봇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트랙 끝에 세워 둔 두꺼운 매트에 그대로 부딪혔고, 쓰러진 몸통에서 작은 불길이 올라왔습니다. 8월 26일 베이징, 100m를 8.64초에 끊고 우승한 톈궁 울트라(Tiangong Ultra)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대회가 증명한 것은 로봇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로봇이 아직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볼트를 0.94초 앞선 기록, 그 뒤에는 매트가 있었습니다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은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666개 팀이 2,056대의 로봇을 데리고 나와 51개 종목에서 1,301경기를 치렀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가 대형급 100m 결승이었죠.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X-휴머노이드)가 만든 톈궁 울트라는 예선 9.39초, 준결승 8.86초를 거쳐 결승에서 8.64초를 찍었습니다. 볼트가 2009년에 세운 9.58초보다 0.94초 빠릅니다. 기사 제목은 대부분 여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로이터가 전한 준결승 현장 묘사에는 한 문장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로봇들을 세우기 위해 결승선 너머에 두꺼운 매트를 깔아 두었고, 톈궁은 그 매트에 충돌한 뒤 쓰러졌으며 몸통에서 작은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 다른 준결승에서는 경주 도중 로봇 한 대가 분해됐습니다. 로이터도 로봇 기록과 인간 기록은 직접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가속은 배웠는데 감속은 아직입니다. 기록표를 초속으로 바꿔 봤습니다. 곡선이 평평했습니다 저는 대회가 발표한 세 종목 기록을 평균 속도로 환산해 봤습니다. 100m 8.64초는 초속 11.57m, 시속 41.7km입니다. 400m 38.15초는 초속 10.49m, 1500m 2분 21.64초는 초속 10.59m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인간 세계기록을 계산하면 100m 초속 10.44m, 400m 9.30m, 1500m 7.28m가 나옵니다. 숫자보다 모양이 이상했습니다. 인간의...

휴머노이드 원격조작, 그 영상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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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0일 테슬라의 '위, 로봇' 행사장에서 옵티머스가 관객에게 술을 따르고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한 참석자가 물었습니다. 너는 진짜 인공지능이냐고. 로봇이 답했습니다. "오늘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 자율은 아닙니다." 그날 그 사실을 밝힌 것은 무대 위의 자막도, 발표자도 아니었습니다. 로봇 자신이었습니다. 로봇이 스스로 실토한 문장 포춘은 2024년 10월 13일 크리스티안 헤츠너 기자의 기사에서 그 장면을 전했습니다. 행사장의 옵티머스들은 특수한 슈트를 입은 사람이 동작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원격 조작되고 있었고, 목소리 역시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블룸버그가 관계자를 인용해 먼저 보도한 내용입니다. 기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머스크는 그날 로봇이 학습된 인공지능 외의 다른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다만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원격 조작 자체는 부정행위가 아닙니다. 지금의 로봇 산업에서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은 표준에 가까운 절차이고, 그렇게 모은 동작이 다음 세대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 사실이 어디에 적혀 있느냐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날의 그 대화를 담은 공식 영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참석자들이 휴대전화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화면뿐입니다. 세 회사의 공식 페이지를 직접 열어 고지 문구를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기사 요약이 아니라 회사가 스스로 쓴 문장을 보려고 1X의 NEO 제품 페이지, 피규어 최고경영자의 게시글, 테슬라 행사 관련 자료를 차례로 열어 '원격'과 '자율'이라는 단어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대조했습니다. 결과는 세 갈래로 갈렸습니다. 1X는 제품 설명에 분명히 적었습니다. "NEO가 모르는 복잡한 작업에 대해서는 1X의 전문가가 정해진 시간에 원격으로 그 동작을 감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

로봇 부품 국산화율 40%대, 벽은 손끝 0.17mm에 있습니다

신규 라인을 셋업할 때 저는 부품표를 위에서부터 훑으며 조달처를 옆 칸에 적어 봅니다. 브래킷과 하우징 가공, 케이블 하니스, 프레임 구조재. 여기까지는 국내 업체 이름으로 칸이 채워집니다. 그런데 커서가 구동계 줄에 닿으면 손이 멈추더군요. 정밀 감속기, 고정도 엔코더, 고응답 서보 드라이브. 이 세 줄에서는 습관처럼 독일과 일본 메이커의 카탈로그를 먼저 펼칩니다. 국내에서 휴머노이드 시제기가 쏟아지는 2026년에도, 정작 그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부품의 조달처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40%대라는 숫자는 어디가 비어 있다는 뜻일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6년 1월 25일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은 이 어긋남을 숫자로 보여 줍니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기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는 세계 4위입니다. 그런데 로봇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은 40%대에 그칩니다. 총출하액의 71.2%가 내수에 묶여 있고, 감속기와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은 하모닉드라이브·야스카와전기 등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60~70%를 쥐고 있습니다.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는 88.8%입니다. 보고서는 이 구조를 "다운스트림 경쟁력에 비해 업스트림과 미드스트림 취약성이 누적된 구조"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봇을 많이 쓰고 많이 만들수록 부품 수입도 같이 늘어난다는 뜻이죠. 다만 40%대라는 수치를 읽을 때 하나는 짚어 두어야 합니다. 이 숫자는 평균일 뿐, 국산이 '어느 등급까지' 닿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벽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중이 아니라 등급입니다. 30arcsec이 손끝에서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 봤습니다 감속기 카탈로그를 열면 각전달오차가 수십 arcsec 단위로 적혀 있습니다. arcsec은 1도의 3,600분의 1이라 감이 잘 오지 않죠. 그래서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1arcsec은 라디안으로...

휴머노이드 배터리, 얼음을 지고 달린 이유

2025년 4월 19일 베이징 이좡 하프마라톤. 인간 12,000명 사이에 휴머노이드 21대가 섞여 달렸습니다. 그 로봇들 등에는 얼음이 실려 있었고, 정비 요원들이 옆에서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며 따라 뛰었습니다. 우승 기록은 2시간 40분 42초.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같은 코스에서 50분 26초가 나왔습니다. 두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바뀐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었습니다. 2025년에는 얼음을 지고 달렸습니다 우승은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만든 톈궁 울트라였습니다. 키 약 180센티미터, 무게 약 55킬로그램. 21.0975킬로미터를 2시간 40분 42초에 완주했습니다. 그 사이 배터리는 세 번 갈았고요. 사람이 하프마라톤 도중에 심장을 세 번 바꿀 수는 없으니, 이 대회에서 배터리 교체는 반칙이 아니라 규칙이었죠. 나머지 로봇들의 사정은 더 나빴습니다. 다수가 과열로 주저앉거나 넘어졌고, 유니트리는 완주를 위해 아예 얼음 배낭을 지웠습니다. 기록만 보면 기술 시연입니다. 그런데 현장 사진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읽히더군요. 로봇의 몸이 스스로 열을 버리지 못해서, 사람이 옆에서 계속 식혀 주고 있었습니다. 사족을 붙이면 이 대회는 인간과 로봇이 같은 코스를 달린 첫 사례였고, 결과는 인간의 완승이었죠. 인간 우승자는 1시간 남짓에 끝냈고요. 토르소 단면을 그려 보니 열이 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왜 얼음까지 필요했는지 납득이 안 돼서, 휴머노이드 상체 단면을 종이에 그려 봤습니다. 가로 35, 세로 45, 깊이 20센티미터쯤 되는 상자. 그 안에 배터리팩을 눕히고, 제어 기판을 세우고, 어깨와 허리 액추에이터를 배치했습니다. 그려 놓고 나서야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열이 나갈 길이 없습니다. 방진과 방수를 하려면 외피를 닫아야 하고, 닫으면 공기가 흐르지 않죠. 팬을 달 만한 자리는 이미 부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열원인 배터리팩은 하필 가장 안쪽. 그래서 계산을 해 봤습니다. 밀폐된 상자가 자연대류와 복사만으로 열을 버릴 때, 표면적...

한 번 학습, 모든 로봇에 배포 — 멀티엠보디먼트 VLA

로봇 자동화를 한 번이라도 검토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A사 로봇을 들이면 A사 방식으로 프로그래밍하고, A사 교육을 받고, A사 부품과 유지보수에 묶입니다. 작업 노하우가 그 기종 안에 갇히는 것이죠. 그런데 2025년 말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기술은 이 구조 자체를 흔듭니다. 한 로봇에서 가르친 동작을 재학습 없이 다른 기종에 그대로 옮기는 '모션 트랜스퍼(motion transfer)'입니다. 오늘은 이 멀티엠보디먼트 VLA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게 왜 공장의 '벤더 종속성'을 흔드는 신호인지 현장 관점에서 짚어 보겠습니다. 멀티엠보디먼트 VLA와 '모션 트랜스퍼'란 VLA(Vision-Language-Action)는 로봇이 눈으로 보고(vision), 말을 이해해(language), 실제 동작(action)으로 옮기는 모델입니다. 여기에 '멀티엠보디먼트(multi-embodiment)'가 붙으면, 하나의 모델이 서로 다른 몸체를 가진 여러 기종의 로봇을 함께 제어 한다는 뜻입니다. 핵심 기술은 모션 트랜스퍼 입니다. 딥마인드는 양팔 로봇 ALOHA, 양팔 로봇 프랑카(Franka),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Apollo) 등 구조가 제각각인 로봇들의 데이터를 하나의 '통합 모션 표현'으로 함께 학습 시켰습니다. 그 결과, 한 기종에서만 보여준 작업이 다른 기종에서도 기종별 재학습 없이(zero-shot) 그대로 작동 합니다. ALOHA에게만 가르친 동작이 아폴로와 프랑카에서도 되고, 그 반대도 됩니다. 이 개념은 제미나이 로보틱스 1.5(2025년 9월) 연구에서 정식으로 제시됐고, 2세대로 오면서 "새로운 양팔 로봇이라면 몇 시간이면 이 지능을 이식할 수 있다"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제미나이 로보틱스 2가 바꾼 전체 그림은 앞선 글에서 정리 했으니, 오늘은 그중 '기종 이식' 하나만 깊이 파 보겠습니다. 한...